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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으로 추억을 재연하는 설치 미술가, 노동식 작가


 
01_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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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틀집 4남매 중 한 명 이었던 노동식 작가는 '솜을 먹고 자란 아이'다. 그의 아버지는 반평생 솜을 만드는 것으로 4남매를 키웠고, 학교를 보냈다. 이런 연유로 노동식 작가는 아버지의 반평생 일터였던 솜틀집의 풍경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의 무허가 건물에 차려진 작은 솜틀집. 빨간 글씨로 ‘솜틀집’이라 쓰인 문을 밀고 들어가면 솜틀 기계의 맹렬한 소음이 귀를 때린다. 그리고 그 기계 한쪽에서는 작은 키에 마스크를 쓴 그의 아버지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오는 하얀 새 솜을 받고 있다.

아버지가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솜. 하지만 노동식 작가의 추억 속에 솜은 더 이상 노동과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솜은 평생을 자식들에게 헌신했던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영원히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02_꿈을 이루어 하늘에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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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식 작가는 대학교 시절 학교 사람들과 떠난 가을 산행에서 비행기를 본다. 아직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적이 없던 그는 가을 하늘에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유유히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언제가 자신도 저런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는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지난 2007년 5월에 완성한 <떴다 떴다 비행기>를 통해 이루었다. 노동식 작가는 젊은 시절 보았던 비행기와 그 비행기가 내뿜던 하얀 비행운을 솜으로 완벽하게 재연해 하늘에 띄웠다.  

03_미로 속에는 언제나 보물이 숨겨져 있다.

노동식 작가는 <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전>에 <떴다 떴다 비행기>를 포함해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들은 미로처럼 구성된 전시장 곳곳에 마치 보물처럼 숨겨져 관객들의 발견을 기다린다. 그의 작품은 일상 속의 소품을 100% 솜으로 재연했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함과 이색적인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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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노동식 작가는 <풍경과 상상...>전을 통해 2008년 최신작인 <운하>도 최초로 공개했다. 영화 속에서 튀어 나온 듯한 장관을 정교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과 함께라면 설치 미술작품이 선사하는 독특한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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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3 15:50 2008/12/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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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딜리아니(2004)>에 출연한 엘자 질버스테인은 예술가를 다룬 전기 영화에서 연인으로 등장했다. 그녀의 데뷔작도 바로 ‘불운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반 고흐(1991)>였다.
엘자는 <반 고흐>에서 바닥을 모르는 빈센트의 고독함을 달래주는 여인 캐티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이어서 그녀는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가수), 파리넬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파리넬리(1994)>에서 카스트라토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바치는 연인으로 열연을 펼친다. 영화 속에서 엘자는 파리넬리를 위해 헨델의 악보를 훔치는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소개되어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을 국내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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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트렉>에 출연한 엘자 질버스테인



<반 고흐>와 <파리넬리>를 통해
엘자는 천재 예술가의 연인을 가장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여배우로 인정받는다. 1998년에 제작된 ‘물랑루즈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로트렉>에서 엘자가 로트렉과 육체적 사랑을 넘어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여류 화가 쉬잔 발라동의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전작의 호평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반 고흐와 파리넬리, 로트렉과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녀는 2004년에 제작된 ‘천재화가’ 모딜리아니의 전기영화 <모딜리아니>에서도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연기한 잔느 에뷔테른은 훗날 모딜리아니가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숨지자 자신의 친정집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면서 ‘세기의 연인’으로 주목받게 되는 인물이다. 술과 마약에 젖은 ‘주정뱅이 화가’ 였던 모딜리아니. 하지만 영화 속에서 엘자는 모딜리아니는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깊이 존경했던 잔느 에뷔테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녀가 이제까지 연기했던 예술가의 연인들 중 잔느의 캐릭터는 가장 섬세하고 복잡했다. 하지만 전작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사랑을 이미 여러 차례 연기했던 엘자는 <모딜리아니>에서 잔느 에뷔테른을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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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에뷔테른을 연기한 엘자 질버스테인

물론 모딜리아니 역을 맡은 앤디 가르시아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엘자가 잔느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면 가르시아의 연기는 결코 빛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자신을 모델로 한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모딜리아니를 껴안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잔느를 재현하는 모습은 이미 그녀가 완벽하게 잔느 에뷔테른이라는 여성에 동화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 <모딜리아니>를 끝으로 아직 엘자는 예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미 그녀는 잔느 에뷔테른을 연기함으로서 ‘예술가의 연인’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대미를 장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가 그녀가 또 다시 예술가의 연인으로 영화에 출연한다면, 그때는 분명 한층 더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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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22:10 2008/12/1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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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파블로 피카소

천재의 곁에는 늘 많은 여인들의 이야기 남아있다.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약 10년 주기로 동거와 이별을 반복했다.

피카소의 첫 번째 여인은 페르낭드 올리비에였다. 피카소는 파리로 영구 이주를 결심했을 무렵 그녀를 모델로 처음 만났다. 피카소와 동갑내기(24세)였던 그녀는 유부녀였지만 곧 피카소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검붉은 머리에 육감적인 몸배를 가졌던 여인 올리비에는 늘 쾌활한 웃음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경제적 빈곤과 우울함에 시달리던 ‘청색 시대’를 피카소는 올리비에를 통해 벗어날 수 있었다.
 
피카소는 그녀와의 동거기간동안 큐비즘을 개척했고,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남겼다. 하지만 곧 올리비에에게 실증난 피카소는 결국 그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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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피카소의 주요 연인들


피카소가 다음으로 만난 여인이 에바 구엘이었다. 피카소는 약 9년간에 걸친 페르낭드와의 동거를 끝내고 30세의 나이에 에바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몸이 약했던 에바는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15년에 결핵으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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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으로 숨진 피카소의 두번째 부인, 에바 구엘

피카소는 그녀와 살기 위해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세레이 사장으로 도피한다. 하지만 에바가 결핵으로 쓰러지자 전염을 우려해 아픈 그녀를 버려두고 이사를 가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 주변으로부터 비난 받기도 했다.

에바를 잃고 피카소는 러시아 발레단의 미술감독을 맡게된다. 그는 그곳에서 세 번째 연인인 발레리나 올가를 만나게 된다. 피카소는 36살의 나이에 25살의 올가의 처음으로 혼인신고를 한다.

하지만 올가가 서민적이고 편안한 삶을 즐겼던 것과 달리 피카소는 귀족적인 기질이 다분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고, 올가는 피카소의 첫아들 파울로를 낳았지만 피카소로부터 버림받는다.

이때부터 피카소의 나이 차이를 무시한 연애행각은 점점 더 심해진다. 그는 네 번째 연인으로 열일곱 살 난 처녀 마리 테레즈 발터를 선택한다. 그녀는 피카소가 남긴 초현실주의 걸작 <거울 앞에 선 처녀>의 모델이 된다. 하지만 마리가 스물두살의 나이로 딸 마리아를 낳자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의 다섯 번째 연인은 프로 사진작인 도라 마르였다. 그녀는 조신하고 온순했던 마리와 달리 매우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여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피카소는 생애 최대의 걸작 <게르니카>는 도라와의 동거기간에 시작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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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다섯번째 부인, 도라마르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피카소는 다시 40살 연하의 처녀 프랑수아즈 질로를 유혹한다. 피카소의 나이는 무려 62세였다. 그녀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피카소의 작업실에 살림을 차렸다. 그녀는 피카소와의 관계에서 아들과 딸을 낳는다.

한편 이 무렵의 피카소는 공산당에 가입했다. 스페인 내전의 참혹상을 세계에 고발한 <게르니카>로 명성이 드높던 피카소는 프랑코 독재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공산당에 가입한다. 아내인 프랑수와즈의 친구였던 주느비에프를 유혹한 피카소는 밀월관계를 즐긴다. 하지만 이것이 들통나자 프랑수와즈는 피카소와의 이별을 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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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그의 마지막 아내 자클린 로크


프랑수와즈와 헤어진 피카소는 젊은 여인들과의 애정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연인이 된 여인은 자클린 로크이었다. 그녀는 72세의 피카소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덕분에 피카소는 말년에 죽는 날까지 매일 거의 한 점씩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정열적인 창작 활동을 계속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12/11 19:06 2008/12/1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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