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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5 혁명을 꿈꾼 화가, 디에고 리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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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노동절 행진에 참여한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부부

"혁명은 혁명예술을 필요로 합니다. 혁명가의 예술은 낭만주의자의 예술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자극제나 흥분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술도 아닙니다. 신경계통에 영양을 공급하는 양식입니다. 투쟁을 위한 양식입니다. 그것은 밀과 같은 양식인 것입니다." - 디에고 리베라


흔히 미술사에서 아내이자 동료화가인 프리다 칼로와 함께 언급되는 디에고 리베라는 1886년 멕시코의 심장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으며,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에 멕시코 최고명문 미술학교였던 ‘산카를로스 미술원’에 입학했다.

6년간 수도원과 다를바 없는 혹독하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 미술교육을 받은 리베라는 다시 한 번 재능을 인정받아 유럽으로 장기 유학을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훗날 ‘에꼴 드 파리(파리파)’라 불리는 젊은 보헤미안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당시 그가 만난 모딜리아니는 한창 창작욕구에 불타고 있는 젊은 예술가였다. 비록 국적은 달랐지만 화통한 성격이었던 리베라와 모딜리아니는 곧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두 사람 서로의 내면에 일렁거리는 천재적인 예술성을 이미 느낌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전>의 전시장 초반부에 만날 수 있는 리베라의 초상화에서는 모딜리아니가 내면의 눈으로 느낀 리베라의 불타는 예술혼이 잘 드러난다. 모딜리아니가 주로 자신의 아틀리에를 드나드는 절친한 친구들과 화상을 모델로  드로잉과 유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이미 예술적으로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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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의 대형 벽화 작품 <Destroit Industry north>



리베라는 프랑스 생활에서 도중 모딜리아니를 제외하고 젊은 시절의 피카소, 브라크, 클레 등과 교제를 갖는다. 그가 만난 예술가들은 훗날 유럽 근대미술의 최고 거장들로 인정받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저 가난한 예술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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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리베라의 <The Aresenal>

멕시코 내란이 끝난 후 조국에 돌아간 리베라는 곧 동료인 시케이로스와 더불어 ‘멕시코 미술가 협회’를 결성한다. 그는 유럽에서 본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대 벽화가 준 감동을 ‘벽화운동’을 통해 재현코자 한다. 그의 아내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프리다 칼로를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는 프랑스 체류 기간 중 느꼈던 진보적이고 자유스러운 유럽의 화풍을 멕시코의 전통 미술 화법과 결합시킨 걸작을 여러 편 남겼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농민지도자 사파타(1930)>와 여러 관공서의 벽에 그린 벽화가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리베라는 오늘날 시케이로스, J.C.오로츠코, R.타마요와 더불어 멕시코 근대미술의 4대 거장이자 동시에 그들 중 가장 멕시코적인 작품을 제작했던 국보급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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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12:41 2008/12/1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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